우리 집은 원래 유교 집안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한 달에 한번꼴로 찾아오는 조상님들의 제사를 정성껏 모셨다. 힘겨운 시골 살림이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한 달에 한번꼴로 떡도 먹고 과일도 맛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비난수를 잘 하셨다. 정월 초하루 떡시루를 안방 웃목에 모셔놓고 삼신 할미께 공손히 양손을 비비며 비난수를 하셨다. 자식들 잘 되라고. 그 소리가 듣기 좋았다.
마을에 교회가 있었다. 육이오 사변 직후 양철 콘센트 막사로 지어진 둥그런 교회였고 잘 가꿔진 일본식 화단과 허물어져 가는 종탑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그 교회 주일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자주는 아니고 몇 달에 한두번쯤 뜸뜸히 다녔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교회 학생회의 임원이 되었다. 세례도 받고 기독교 신앙에 입문했다. 예수를 나의 구주로 모시고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살기로 마음 먹었다.
평생을 교회를 다니면서 내 마음을 지배한 화두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천국'이다. 영어로는 Kingdom of Heaven, 하늘의 왕국, 한자로는 天国이다.
성경을 읽다가 天国이라는 말이 나오면 거기서 멈췄다. 천국, 천당, 하나님의 나라.... 성경은 다양한 표현으로 천국을 지칭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산상수훈(山上垂训)에도 천국이 여러 번 나온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산상수훈에는 두 개의 키워드가 있다. '마음'과 '천국'이다. '마음'을 잘 지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중국어 성경에 보니 다음과 같이 번역이 되어 있다.
虚心的人有福了,因为天国是他们的。
清心的人有福了,因为他们必得见神。
为义受逼迫的人有福了,因为天国是他们的。
'허심'(虚心)과 '청심'(清心)을 가진 자들이여 너희가 '견신'(见神)을 하고, '천국'(天国)이 너희들의 것이다. 깔끔하다. 역시 중국어는 압축의 언어이다.
허심과 청심을 이해 못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라도 오해 없이 이해할 수 있는 심플한 개념이다. 특히 유교나 불교, 천도교나 힌두교, 심지어 모슬렘들조차도 이 말을 이해 못 할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마음챙김, 마음수양을 최대의 목표로 삼는 선불교의 가르침과도 아주 잘 연결되는 개념이다.
나도 이 개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천국'은 다르다.
'천국'은 무엇이고, 예수는 어떤 생각으로 마음을 비운 자들에게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했을까?
우리가 죽은 후에 간다고 믿는 그 휘황찬란한 유리바다가 펼쳐지는 천당이 '천국'일까? 지상에서 힘들게 산 그들에게 사후의 세계에서 보상이 된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했던 것일까?
아닐 듯싶다.
'천국'은 하나님의 왕권이 지배하는 곳이다. 물리적 시공간이라기보다는 신학적, 철학적 개념으로 들린다.
예수는 유대인이었다. 2천년을 이어온 유대교의 신앙에 '카발라'(Kabbalah)가 있다. 여기엔 전래된 지혜와 믿음이 요약되어 있다. 이 카발라의 중심에 '생명의 나무' (The Tree of Life)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내용으로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도식과 마주친다.
이 그림은 '생명의 나무'를 도식화한 것이다. 마지막 10번째 마디가 '말쿠트'이고, 이것의 영어 번역이 Kingdom이다. 이 도식은 좀 더 자세히 그려지면 다음과 같이 그려진다.
생명의 나무는 에덴 동산에 심겨진 바로 그 나무이며, 우주 생성과 존재, 변화의 비밀을 담고 있는 도식이다. 나무의 정수리에서 뿌리까지 우주를 창조한 신의 에너지 אֵין סוֹף '아인 소프'(Ein Sof)가 흘러넘친 것이 도식화한 것으로 본다.
몇 가지 주요 특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서 신의 속성을 드러냈다. 이렇게 드러난 신성은 인간의 영혼에 심겨졌고 인간의 영혼이 구원을 받는 영적 길을 안내한다.
2) 생명의 나무는 우주가 생성 존재하는 과정에 대한 상징이다. 생명의 나무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이 있음을 암시한다.
3) 최초의 존재가 흘러나온 무한의 무(infinite nothingness)가 있다고 생각하며 이는 다양한 존재가 폭발적으로 나타나기 전 ‘에너지’ 상태를 의미한다.
4) 시간과 공간이 먼저 존재했다고 믿지 않으며 이것들은 생명의 나무의 3단계 정도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1단계 ‘케테르’ 정수리(crown)는 ‘아인 소프’(무한광, 无限光, endless light)가 궁극적 무한 에너지 혹은 무한 빛으로 응축된 것으로 만유가 흘러나온 원시 에너지이다.
5) 2단계 ‘쵸크마’ 지혜는 무한히 뜨겁고 응축된 단일점이 시공간으로 확장된 것이다.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무한 강도의 역동적 순수 에너지이다.
6) 3단계 ‘비나’ 깨달음은 원시 여성 에너지로 이 ‘쵸크마’를 받아 뜨거운 열은 우주 전체에 퍼져있는 다양한 형태들로 식혀지고 변형 생성된다. ‘비나’는 수난의 개념이기도 하다. 최초 3단계의 ‘초’(supernal)여성적 에너지가 선성한 연합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우주를 태어나게 했다.
7) 생명의 나무는 ‘케테르’에서 ‘말쿠트’까지 10단계이며 각 단계의 숫자는 그 자체가 중요한 상징으로 그 단계의 본질을 말해준다. 마지막 10단계 ‘말쿠트’에 이르러 최초의 순수 무한 에너지는 물리적 우주, 물리적 현상세계로 고체화된다.
8) 에너지는 모든 창조의 기초이므로 생명의 나무는 모든 생명의 영역에 포괄적으로 적용 가능하다. 특히 인간의 내면 세계부터 무의식과 상급 자아(the higher self)에 대한 인식에까지 일체를 지배한다.
9) 창조의 에너지가 물질로 압축되었기 때문에 생명의 나무를 통해서 원래의 진정한 본성 즉 ‘케테르’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구도자로서 신의 표현인 우리 자신과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여 원래의 신성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해야 하며 그 수단은 생명의 나무에 그려진 각 단계들이 지표가 된다.
10) 생명의 나무를 타고 내려오거나 타고 올라가는 두 가지 흐름이 있다. 전자는 '불타는 검'(The Flaming Sword) 혹은 화염검의 흐름이고 후자는 '지혜의 뱀'(The Serpent of Wisdom)의 흐름이다.
인간은 에덴 동산을 나오면서 신의 속성을 이해하거나 신의 속성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질병을 얻었을 때 '놋뱀'을 쳐다보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다. '놋뱀'은 바로 생명의 나무로 올라가는 '지혜의 뱀'을 상징한다.
'천국'은 신의 속성에 참여하는 궁극적 여정의 첫 관문이다. '허심'과 '청심'을 가진 자들은 바로 이 관문에 발을 디디는 복을 얻게 된다.
카발라와 예수의 산상수훈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카발라는 주역의 팔괘풀이처럼 지나치게 복잡하고 난해하지만 예수의 산상수훈은 너무도 간결하고 단순하고 순수하다. 그래서 더욱 진리로 다가온다.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깨끗이 한 너희에게 복이 있다. 천국이 너희 것이다. 천국은 우주 생성의 원리와 신의 속성에 참여하는 첫 관문, '말쿠트'(מַלְכוּת)로서의 천국이 아닐까?
허심과 청심으로 가는 천국.... 말쿠트....세피롯 10.... 티앤궈.... 카발라.... '하늘나라!'
예수는 공관복음서에서 하나님의 명을 받은 '인자(人子)'가 구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올 때 이런 나라가 이 땅에 펼쳐진다고 설파했다. 동시대인들이 죽기 전에 이런 '하나님의 나라' a utopian kingdom이 그들의 살아 생전에 펼쳐지고 모든 악들이 심판을 받고 선행들이 보상을 받으며 no more suffering.... 더 이상 '고(苦)'가 없는' 나라가 찾아올 것이라고 가르쳤다.
더 이상 '고(苦)'가 없는 나라.... 하나님의 나라.... 天国!
유대교 전통에서 극도의 모순을 느끼고 찾게 된 '신의 나라' 天国! 유대교의 일원론적 신관과 율법의 모순을 타파할 수 있는 개벽사상.... 텅빈 그의 마음 속에 크나큰 감동과 울림과 환희로 다가온 하나님의 나라! 용서와 사랑의 나라! 그리고 그 이후 역사 속에 펼쳐진 보편종교로서의 기독교! 그러나 天国은 여전히 미완성이고 힘써 찾아야만 찾을 수 있는 그 어떤 나라다.
끝으로, 한국적 발상을 해본다.
우리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선도(仙道) 사상! 우리의 삶이 낙원을 지향하려면 인간을 포함하는 생명권 전체, 동식물과 자연, 만물과 접하면서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접화군생(接化群生) 사상! 아득한 그 옛날, 1,100년 전 치열하게 이 땅에서 살다간 崔致远이라는 대학자의 사상이다. 접화군생으로 도달한 그 경지가 천국(天国)이 아닐까?
다석 류영모 선생은 일찌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참나인 얼나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일이 얼나인 참나를 찾는 것이다. 하늘나라에는 얼나가 들어간다.”
虚心과 清心 으로 가는 하늘나라, 참나를 찾은 이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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