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다.
'윤슬'과 '물비늘.'
조어 과정을 생각해 볼까나?
'물비늘'은 '물'과 '비늘'의 합성어라서 아마 조어가 어렵지 않았을 듯. 하지만 '윤슬'은?
글쎄.... '윤나는 이슬'이 줄어든 것이었을까? 아님 '윤나는 구슬'이 줄어든 것이었을까?
모르겠다. 자신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윤슬을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로 풀이한다.
물비늘은 '잔잔한 물결이 햇살 따위에 비치는 모양을 이르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두 낱말에 대해 낱말의 의미가 크게 구별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소개한다.
쉽게 말해 동의어(同意語), 시노님(synonym)이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정의해 보면,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아련히 반짝이는 잔물결.
물비늘 : 잔잔한 물결이 햇살 따위에 비치는 모양을 이르는 말.
차이가 없는 듯 차이가 있다. 윤슬은 '반짝임'에, 물비늘은 '모양'이라는 말에 방점이 찍힌다.
이해에 도움이 되게 용례를 살펴보자.
1) 아침녁 강가에는 햇살을 받아 퍼지는 윤슬이 부드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2) 그녀는 호수의 물위에 곱게 이는 윤슬을 바라보았다.
3) 내 마음에 이는 잔물결이 마치 물비늘처럼 퍼져 간다.
4) 바람이 불자 강물에 찰랑 물비늘이 일었다.
비슷하다. 하지만 분명 같이 쓸 수는 없을 듯한, 다른 낱말이다.
모든 동의어는 99%는 같더라도 나머지 1% 때문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고, 다른 용법으로 쓰이게 된다.
아래 그림들은 각각 '윤슬'일까 아니면 '물비늘'일까?
두 단어의 1% 차이는 아마도 '반짝임'일 것 같다.
'반짝임'이 없을 땐 '윤슬'이란 표현을 쓸 수 없을 것 같으므로 두번 째 그림만 '물비늘'이라고 해야 하고, 나머지 그림들은 '윤슬'이라 부르면 좋을 듯하다.
윤슬과 물비늘이 공존하는 상황도 있다.
모든 윤슬은 주변에 물비늘을 포함하는 것 같기도 하다.
영어로는 물비늘은 ripple on the lake water 또는 ripple on the sea water라고 하고, 윤슬은 그 앞에 shiny가 더 붙는다.
'반짝임'에 주목할 때는 '윤슬', 물결의 '형태'에 초점을 맞출 때는 '물비늘', 이렇게 정리하면 좋을 듯하다.
대하소설 <혼불>을 쓴 최명희 작가가 호수의 잔물결을 아래와 같이 표현한 적이 있다. '윤슬'이 아닌 '물비늘'이라는 표현을 써서.
어느 날인가 저수지를 구경하러 모여든 사람들 틈에서 평순네가 파란 물비늘을 일으키며 반짝이는 호면을 보고는....
<최명희, 혼불>
'반짝임'보다는 잔 비늘 같은 물결의 '형태'에 초점을 맞춘 표현으로 '윤슬'을 피하고 '물비늘'을 쓴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야 아름다운 우리말 동의어 '윤슬'과 '물비늘'의 차이에 대해 뭔가 좀 이해가 되는 기분이다.
필요할 때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중한 낱말들과 사귀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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