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묵상

김지하 시집 <흰 그늘>에 나오는 시 '나'

제이콥KS박 2022. 10. 7. 09:35

책방에서 사 온 김지하 시인의 시집 <흰 그늘>을 읽고 있다.

 

지난 주 책방에서 사온 시집 이제 막 읽기 시작했다

첫 시로 등장한 게 '나'인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너무 좋은 시였다. 그냥 읽으면 이해가 안 되는 시인 듯하여 공부를 하며 읽었다.

 

시를 읽은 첫날 공부한 메모다 그 뒤로도 자질구레한 메모가 늘어만 갔고 아예 워드 문서로 저장을 해두었다

詩는 한 마디로 우주를 향해 마음을 여는 시이다.

 

'나'는 우주를 향해 마음을 닫지 않고 열어 놓고 있고, 또 그리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를 천명하는 시이다.

 

지기(至氣)로 시작해서 골덕내로 끝난다.

 

至氣는 천도교에서 '우주 본체의 본질을 理的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지기금지 원위대강'은 '지기가 지금 나에게 크게 내려오기를 소원하나이다'라는 기도문이다. 바로 뒤에 오는 '모심'이라는 말은 우주에 충만해 있는 생명의 기운 '한울'님을 내 몸에 모시고 받들겠다는 다짐이다.

 

'나는 내가 아니다'라는 말은 큰 우주를 품고 사는데 작은 내 개인의 몸, 마음, 체면, 또는 의식(意識)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깨달음으로 들린다.

 

큰 우주의 작은 일부일뿐이라는 인식은 그 다음 행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나'는 '부처도 한울도 신령도 아닌 한 기이한 물방울'이다. 이 '물방울' 또는 '물거품'은 동강 제장마을 앞 골덕내에 가면 수없이 많은 그 '물방울'과 '물거품' 중 하나일뿐이다.

 

제장마을 앞 동강 물굽이가 용트림하는 곳

너무 겸손하고 올곧은 자기 인식이다. 감동적이다.

 

가운데 낀 '진정생 그리고 참으로 복승했다'는 말은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이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의 소망, a grand goal of life를 나타내려 한 게 아닌가 한다. 

 

언어는 입밖에 나오는 순간 나의 것이 아니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 사이의 교감이고 교섭이고 협상(negotiation)이다.

 

김지하의 서시(序詩) '나'는 내게는 적어도 이렇게 읽힌다.

 

공부를 좀 더 해보니 자신이 가는 길,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어느 책에다 시인은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 길을 갈 뿐이다. 그러나 그 길은 자동차로 달리는 길이 아니다. 그 길은 이제 신불(神佛)이 이끌어야 갈 수 있는 길, 아아! 손곡, 양동길, 수백삼군리, 또는 봉양길, 혹은 세계에로의 길. 그리고 '그림 달' '손톱 시' '새 시'의 어린아기 영감. 배부른 산 무실리 촛불방의 허름한 촌영감 똥개 영일(英一)이가 춤추며 가는 길...."

 

김영일(金英一)은 김지하(金芝河) 시인의 본명이다.

 

시인은 올해 5월 8일 공동묘지로 오라는 초청장을 받고 떠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