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우리말에 '봄 타다' '가을을 타다'라는 동사가 있다. 이걸 영어로 번역하려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타다'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보면 무려 뜻이 아홉 가지나 되는 다의어(polysemous word)다. 대표적인 의미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1. 불에 타다.
2. 햇볕에 타다.
3. 말을 타다.
4. 산을 타다.
5. 설탕을 타다.
6. 곗돈을 타다.
7. 복을 타고 나다.
'봄 타다'라는 말의 뜻은 봄철에 입맛이 없어지거나 봄기운 때문에 마음이 들뜨는 것을 의미한다.
'타다'라는 말에는 기본적으로 '어떤 조건이나 시간, 기회 등을 이용하다'라는 의미가 있는데 '봄이나 가을을 타다'라는 표현은 바로 이 의미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 신조어 '썸 타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게 무슨 말이지 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보니 참으로 신박한 우리말 조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맨처음 이 표현을 만들어낸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만나 보고 싶을 정도로 나는 이 표현의 찐팬이다.
온라인 국어사전에 보면, '썸 타다'라는 말은 '아직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서로 사귀듯 가까이 지내다'라고 되어 있다.
좀 더 자세히는, 영어 '썸싱을 타다(There is something between them)'에서 나온 말로 추정되는데, 아직 연인 관계는 아니지만 마치 사귀는 것처럼 가까이 지내는 관계를 일컫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 남도 아니고 연인도 아닌 애매한 단계를 이르는 말이다. 또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하기 전 미묘한 관계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다양한 커플들이 '썸 타는' 관계에 놓인다.
썸 타는 선남선녀를 가리켜서는 '썸남 썸녀'라고 한다.
'야 너희들 썸 타니?'를 영어로 표현하면, Are you guys talking? 정도가 된다.
원래 영어에는 'some'타는 관계라는 표현이 없었는데 K-드라마 덕분에 '썸 타다'(being in a "some"-relationship)이라는 표현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영어 슬랭으로 some은 '오지게'라는 뜻이 있다. Mom's apple pie is some good!이라고 하면 '우리 엄마 파이 오지게 맛있어!'란 뜻이 된다. '썸 타다'라는 '썸'과는 거리가 있는 표현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썸 타는 젊은 커플'들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 그 커플들이 다들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기를 축원한다. '썸 타는' 대한민국을 기원한다.
恭喜你恋爱了恋爱! [gōngxǐnǐ liànàile liànài] (썸 타는 당신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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