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어빈(William Irvine) 교수가 쓴 '훌륭한 삶에 대한 안내'(A Guide to the Good Life)라는 스토아철학(Stoicism) 입문서를 우연한 기회에 구입하여 읽으면서 고대 로마인들의 철학과 지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젊은 시절 이탈리아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고대 로마인들이 놓은 거대한 수로 건축물이었다. 수백리가 떨어진 수원지에서 물을 끌어다 식수로도 쓰고 목욕물로도 쓰기 위해 수로를 건설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로마에서 500km 떨어진 지방도시를 마차가 달릴 수 있게 직선도로를 놓기도 했다. 2,000년전은 그만두고 100년전에도 우리나라에는 직선도로라는 것이 없었다. 모든 길은 자연의 윤곽을 따라 나 있는 곡선도로였다. 그런데 그 옛날 로마인들은 직선 고속도로를 놓았다. 그리스 수학자 알키메데스를 데려와 측량 용역을 맡기면서 완벽한 도로를 건설했다고 한다. 서양문명은 이때 이미 동양을 한참 앞질러 나갔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형 원형경기장 콜로세움과 거대하고 웅장한 성당 건축물 등 로마는 정말 볼거리가 많았다. 나폴리 쪽으로 내려가니 소렌토와 폼페이라는 도시가 나왔다. 하루 아침에 잿더미로 변한 도시의 유적들을 관람했는데 나중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로마문명 특집을 내면서 폼페이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한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느낀 고대 로마인의 생활수준은 오늘날 우리의 생활수준과 차이가 거의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의 풍요 속에서 고대 로마인들은 높은 수준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발달한 철학이 놀랍게도 '금욕주의' 스토아철학이다. 그리고 이 철학은 꾸준히 이어져 데카르트와 쇼펜하우어, 쏘로오 같은 근대 사상가에게서 그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인류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철학인 셈이다.
스토아철학은 그리스의 철학자 제노(Zeno)에게서 시작되었지만 그리스보다는 오히려 로마로 건너와 꽃을 피운다. 로마 스토아철학의 3인방은 에픽테투스, 세네카, 아우렐리우스 세 사람이다.
에픽테투스는 AD50년 경에 노예로 태어난다. 하지만 로마는 이미 노예라 하더라도 머리가 좋고 재주가 있는 노예는 평민이나 귀족과 다름 없는 일들을 할 수 있었다. 꽤 높은 관직도 받을 수 있었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될 수 있었다. 고대 로마인들의 이런 유연하고 합리적인 사유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길이 없다.
에픽테투스의 가르침 가운데 촌철살인하는 명언이 있다.
모든 철학을 관통하는 두 개의 키워드. '지탱하라'와 '삼가라.' 라틴어나 영어는 각기 -tenere와 -tain으로 각운이 맞는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앞에 붙은 접두어 sus-와 abs-에 의해 의미가 구별된다.
'지탱하라'는 말은 바르게 사는 일(To live a virtuous life)이 어려우니 초심을 잃지 말고 끝까지 지탱(sustain)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렇게 하려면 모든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삼가는(abstain)' 일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생이나 철학의 핵심은 '지탱'하고 '삼가는' 일, 바로 이 두 가지라는 것. 확 와닿는다!
세네카는 로마의 명문가 출신으로 네로 황제의 자문역을 담당하는 등 정치가로 출세하기도 했지만 직언을 자주 하는 바람에 나중엔 미움을 사서 콜시카 섬이라는 외딴 섬으로 유배를 가기도 하고 급기야는 사형에 처해졌다. 그는 철학 외에도 다방면에 뛰어나서 극작가로도 명성을 얻었고, 이재에 밝아 로마 최초의 자본투자자의 길을 걸으며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다만 자신의 철학적 사명에 투철하여 평생을 금욕적으로 검소하게 살았다.
금욕주의자에게도 부와 명성은 나쁜 것이 아니다. 시민의 의무를 다하다 보면 부도 얻고 명성도 얻을 수 있다. 다만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세네카는 말한다: "나는 현자가 되기를 꿈꾸지 않는다. 그저 매일 매일 실수를 부끄러워 하며 내 잘못의 수를 줄여나갈 뿐이다." 참으로 겸손하고 현명한 말이다. 득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다 이런가 싶다.
마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명상록(Meditations)'으로 유명한 철학자 왕이다. 그는 121년에 태어나 180년에 죽었다. 황족으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스토아철학을 공부했고 '자발적 불편'과 '시민에 대한 의무'를 몸소 실천하면서 평생을 검소하고 금욕적으로 살았다. '명상록'에 남긴 그의 명언들을 보면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았는지를 능히 짐작케 해준다.
"육체의 속삭임(murmurs of the flesh)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나는 언제나 자유인(a free agent)으로 남겠다."
"인생은 춤을 추는 무대가 아니라 레슬링을 하는 싸움판이다." (Life is more like wrestling than like dancing.)
그는 철학자 왕답게 신하와 백성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고 전쟁에 나가면 늘 선두에 섰으며 막대한 전쟁 비용을 위해 평민이 아닌 귀족들에게 세금을 거뒀고 그러기에 앞서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며 솔선수범했다.
이들 스토아철학자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대다수의 인간은 불행하다. 이유는 어떤 것이 가치 있는지를 모르고 혼돈에 빠져 살기 때문이다.
다음은 스토아철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묵상용으로 디자인해 본 문구들이다. 좋은 의미들을 함께 나눴으면 해서 포스팅한다.
우리를 부자가 되게 해주는 것도 우리의 마음이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우리의 마음이다. (It is the mind that makes us rich. It is the mind that makes us happy.)
고통과 불행은 마음의 평정을 잃은 데서 온다. 무가치한 것들을 가차없이 잘라내라. 그렇지 않으면 헛살게 된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No!"라고 말하는 일이다. 무가치한 일은 잘라내기 어렵다. "No!"만 잘 해도 우리의 인생은 성공한다.
행복은 우리의 본분을 다하는 데 있다. 우리의 본분은 바르고 덕스럽게 사는 일이다. 본분을 다할 때 마음의 평정, 즉 '트랭퀼리티'(tranquility)가 찾아온다.
세네카의 명언을 끝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담박에 현자가 될 수는 없다. 한 땀 한 땀 시나브로 노력해 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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