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이었던가? 우연히 아파트 창가에서 까치 한 마리가 키다리 소나무 맨윗가지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 보는 것을 보았다.
그 까치가 전망하는 세상이 내가 땅위를 걸어다니며 전망하는 세상보다 훨씬 더 넓고 풍부하고 고귀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까치가 존경스러워졌다.
까치의 울음소리는 좀 밍밍하다. 까악! 까악~~ 깍! 평소에는 곡조도 단조롭고 한 두 마디밖에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있을 때는 조금 다르다. 열정적으로 울어댄다.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숫놈이다. 암놈은 수줍은 듯 옆에서 자리를 지키며 숫컷의 노랫소리를 감상하기만 한다.
까치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새들이 존경스러워졌다. 그래서 매일 자연을 접하기 위해 산책을 나가서 새들을 관찰하고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어본다. 새들을 만나면 아는 체를 해주고 그들의 다양한 노랫소리 곡조를 익히기 위해 노력한다.
요즘엔 일주일에 두번씩 국악 기초를 배우기 위해 '판소리 학교'에 간다. 한 20분 정도 배산 사거리쪽으로 걸어가는데 내 귓가에 새소리가 들려온다. 삐리릿 삐리릿 삑 삑 삐리릿 삑! 주로 직박구리 소리다.
차들이 질주하는 소음을 뚫고 그 작은 몸집의 직박구리는 선명하게 가락이 돋들리는 노랫소리를 시전한다.
직박구리여! 님의 발성법과 공명 내공에 리스펙트! (마지막에 들리는 꾸륵꾸륵 소리는 멧비둘기 소리다.)
직박구리가 항상 이렇게 우는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레퍼토리가 있다. 세 종류만 소개해도 좋을 듯하다.
지나가다 '아니, 새소리가 왜 저렇게 시끄러워!' 하면 그게 바로 직박구리 소리다. 일명 '떠들이새!' 그들의 다양한 곡조를 새겨 들으며 직박구리와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 본다. '님 오늘 기분 좋으시네요!'
재미있는 것은 우리 동네 직박구리 노랫소리와 다른 동네 직박구리 노랫소리가 아주 조금은 다르다는 것이다. 새들도 방언이 있다! 그리고 같은 직박구리라 하더라도 기분 좋을 때의 곡조와 기분 나쁘거나 신경질 날 때의 곡조가 많이 다르다.
개인차도 심하다. 우리 동네에 사는 직박구리는 나름의 예쁜 곡조를 만들어내어 기분 좋은 음악을 선사하는 친구들이 있다. 저게 직박구리 울음소릴까? 처음엔 다른 새라고 느껴질 정도로 의아하게 들리지만 잘 들어보면 참신하고 아름다운 곡조의 뉴 버전 직박구리 노래 소리다. 그리고 나뭇가지에 앉아 울음 우는 모습을 보면 영낙없는 직박구리다.
새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새 울음소리를 몇 개의 토막으로 잘라내어 앞뒤 시퀀스를 바꿔 들려주었더니 그 새들이 '이건 뭥미?'하며 뜨아해 하더라는 연구 보고가 있다.
한 마디로 새들의 노랫소리에도 문법이 있다. 범고래나 돌고래는 굉장히 복잡한 그들 나름의 언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인간만이 똑똑하다는 건 인간의 편견에 불과하다.
내가 사는 동네, 특히 모현근린공원에는 봄 내내 종다리들이 들끓는다. 참새보다 조금 더 크고 날씬하고 다리가 길다. 다른 계절엔 잘 목격되지 않는 걸 보니 텃새 같진 않고 어디선가 날아온 친구들이다. 노고지리라고도 하고 종달새라고도 하는 종다리는 높은 하늘로 올라가 노래를 부른다는데 아직 울음소리를 들어보진 못했다.
엊그제는 공원을 산책하다가 반가운 노랫소리를 들었다. 휘파람새 소리였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지나가다 멈춰 서서 듣고 또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옆에서 여유있게 씨앗을 주워 먹는 멧비둘기도 보인다. 멧비둘기는 꾸륵꾸륵 노인네가 앓는 것 같은 특유의 울음소리를 낸다. 전혀 새 같지 않고 개구리나 맹꽁이 울음소리 비슷하다.
배산공원 숲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박새들도 만난다. 박새들도 명창이다. 다양한 레퍼토리가 있다.
방울새는 어떻게 울까? 평소엔 이잉 이잉 하는 싱거운 소리를 낸다. 하지만 무언가 필이 오면 방울 굴러가는 소리로 곡조를 바꾼다. 평성과 상성, 하성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창하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꾀꼬리는 또 어떤 울음을 울까? 목소리가 좋거나 노래 잘 하는 사람을 가리켜 '꾀꼬리 울음소리' 같다고 하는데 백프로 공감이다. 휘이 꾀꼬로~~ 휘이 꾀꼬로~~! 꾀꼬리의 청아한 고음 울음소리는 정말 아름답다.
초여름 어린 시절 이 산 저 산 옮겨가며 멀리서 들려오던 추억의 울음소리가 있다. 뻐꾹~~ 뻐꾹~~ 뻐뻐꾹! 뻐꾸기는 아직도 변함없이 그 울음을 운다.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는 명창 울음소리다.
여름이 무르익으면 남방에서 오는 철새 후투티가 다시 이곳을 찾을 것이다. 추장새라고도 하는 후투티는 울 때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정중하게 인사를 한 번 한 후 울음소리를 낸다. 정말 멋진 추장다운 자태를 선보인다.
끝으로 우리 주변에 가장 흔한 참새가 내는 울음소리를 소개하며 포스팅을 마치고자 한다. 단순히 짹짹만 하는 게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로 울음소리를 낸다. 중창도 있고, 합창도 있다.
다양한 새들을 품는 자연이 있어 행복하고, 날마다 새들의 노래를 공으로 들을 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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