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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를 배우면서

우리 집은 음치 집안이다. 젊은 시절 아버지가 노래하시는 걸 들었는데 정말 듣기 힘들 정도로 음치셨다. 어머니는 문학소녀였고 미술 재능은 뛰어나셨지만 음악 재능은 별로여서 한번도 노래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형제들 모두 거의 음치 수준이다. 막내가 그래도 노래 좀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무슨 절대음감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내 노래 실력은 교회를 다니면서 한때 상당한 경지(?)에까지 올랐었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노래 실력이 다시 바닥을 쳤다. 노래를 하고 싶은데 노래가 안 나온다. 내가 들어봐도 완전 음치로 회귀했다. 절망감 속에서 살아가다가 큰 결심을 했다. 판소리를 배워야겠다! 우연한 기회에 이다은 소리꾼 님을 알게 되었다. 탈렌트가 와서 울고 갈 정도의 미인이신데 한국판소..

일상다반사 2023.05.20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어느 날이었던가? 우연히 아파트 창가에서 까치 한 마리가 키다리 소나무 맨윗가지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 보는 것을 보았다. 그 까치가 전망하는 세상이 내가 땅위를 걸어다니며 전망하는 세상보다 훨씬 더 넓고 풍부하고 고귀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까치가 존경스러워졌다. 까치의 울음소리는 좀 밍밍하다. 까악! 까악~~ 깍! 평소에는 곡조도 단조롭고 한 두 마디밖에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 있을 때는 조금 다르다. 열정적으로 울어댄다.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숫놈이다. 암놈은 수줍은 듯 옆에서 자리를 지키며 숫컷의 노랫소리를 감상하기만 한다. 까치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새들이 존경스러워졌다. 그래서 매일 자연을 접하기 위해 산책을 나가서 새들을 관찰하고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어본다. 새들을 만나면..

자연과 생태 2023.04.28

천일야화(千一夜話) 아라비안나이트를 읽고

아라비안나이트.... 천일야화.... 알라딘과 알리바바, 신밧드가 나오는 이야기.... 아랍어로는 '알프 라이라 와 라이라' أَلْفُ لَيْلَةٍ وَلَيْلَةٌ (Alf laylah wa laylah)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만 보던 아라비안나이트를 영역본으로 읽었다. 1909년 케이트 위긴과 노라 스미쓰가 편집한 350페이지 짜리 축약본이다. 원본은 380여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어마어마한 장편이지만 가장 재밌는 이야기 10개만을 뽑아서 20세기 초 미국의 독서 대중을 위해 고쳐쓰고 편집한 버전으로 읽었다. 읽다보니 너무 재밌어서 두 주에 걸쳐 시나브로 조금씩 조금씩 야금야금 뜸 들여가며 읽었다. 다 읽고나니 이제 또 뭘 읽을지가 걱정이다. 그만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6세기경 사산왕조 때 ..

일상다반사 2023.04.08

산상수훈의 교훈: 虚心과 清心을 가진 자들과 天国

우리 집은 원래 유교 집안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한 달에 한번꼴로 찾아오는 조상님들의 제사를 정성껏 모셨다. 힘겨운 시골 살림이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한 달에 한번꼴로 떡도 먹고 과일도 맛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비난수를 잘 하셨다. 정월 초하루 떡시루를 안방 웃목에 모셔놓고 삼신 할미께 공손히 양손을 비비며 비난수를 하셨다. 자식들 잘 되라고. 그 소리가 듣기 좋았다. 마을에 교회가 있었다. 육이오 사변 직후 양철 콘센트 막사로 지어진 둥그런 교회였고 잘 가꿔진 일본식 화단과 허물어져 가는 종탑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그 교회 주일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자주는 아니고 몇 달에 한두번쯤 뜸뜸히 다녔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교회 학생회의 임원이 되었다. 세례도 받고 기독교 신앙에 ..

김지하 시인의 시 '花開'를 읽고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나도 꽃을 좋아한다. 바야흐로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오고 있다. 마음이 착잡하여 시 한 편을 읽었다. 김지하 시인의 ‘화개’다. 화개(花開) 부연이 알매 보고 어서 오십시오 하거라 천지가 건곤더러 너는 가라 말아라 아침에 해 돋고 저녁에 달 돋는다 내 몸 안에 캄캄한 허공 새파란 별 뜨듯 붉은 꽃 봉오리 살풋 열리듯 아아 '花開' 시를 한 두 차례 반복해서 읽으면서 가볍게 분석을 해보았다. ◆ 성격 : 철학적, 서정적, 지식발견적(heuristic), 영탄적. ◆ 표현과 구성 : 권위를 암시하는 청유법 대화로 시작. 1연과 2연의 상호대응 및 상호보완식 구성이며 전체와 부분이 유비적으로 연결되는 제유적, 점층적 의미확대식 구성. 마지막 문장, 즉 2연은 ‘화개’는 '허공에 별 뜨고..

세종의 비밀 프로젝트 한글 창제

1443년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다. 바로 그 무렵 중국 명(明)의 황실에선 8살에 황위에 올라 환관 왕진(王振)의 조종을 받고 있던 스물 다섯 살의 영종(英宗)이 수비대장과 목검 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영종이 사정 봐주지 말고 공격하라는 말에 날카로운 공격을 하다가 수비대장의 목검이 영종의 몸을 스치며 겉옷을 갈라지게 했다. 영종은 잘 했다고 칭찬하며 '너를 용서한다'는 말을 들려주며 그를 내보냈다. 하지만 왕진은 그를 다시 불러 '황제는 용서했지만 나는 너를 용서하지 못 한다. 이 놈에게 곤장 70대를 가하라!' 그는 곤장 70대를 찰지게 맞고 평생 걸을 수 없는 불구가 되었다. 황제의 권위가 곧 그의 부귀영달의 근원이었다. 그 권위를 지키기 위해 그는 오버에 오버를 거듭했..

언어 사랑 2023.01.30

중국어 동화로 빠지는 童心의 世界

중국어 공부를 시작한 지 어언 1년이 되었다. 강호에 수많은 고수들이 두루 활동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달인이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달인의 길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독학으로만 공부한 탓에 특히 발음이 안 좋아 회화는 젬병이 된 게 아닌가 싶어 이제 드디어 학원에 등록하여 다니고 있다. 원어민 선생님으로부터 실생활에 쓰이는 표현을 하나 하나 배우다 보니 회화 실력이 조금씩 늘고 있다. 중국 드라마 麻辣芳邻을 다운로드 받아 열심히 보며 공부하고 있고, 요 며칠 동안은 중국어 동화에 푹 빠졌다. 중국어 동화 읽기로 동심의 세계에 빠져든다. 너무 행복하다. 백설공주나 은도끼 금도끼도 좋고, 안델센의 성냥팔이 소녀 중국판 동화도 너무 좋았지만 오늘날 찐 중국 교육문화가 들어있는 진짜 동화로 치고 들어가고 싶어..

언어 사랑 2022.12.21

고대 로마인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윌리엄 어빈(William Irvine) 교수가 쓴 '훌륭한 삶에 대한 안내'(A Guide to the Good Life)라는 스토아철학(Stoicism) 입문서를 우연한 기회에 구입하여 읽으면서 고대 로마인들의 철학과 지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젊은 시절 이탈리아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고대 로마인들이 놓은 거대한 수로 건축물이었다. 수백리가 떨어진 수원지에서 물을 끌어다 식수로도 쓰고 목욕물로도 쓰기 위해 수로를 건설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로마에서 500km 떨어진 지방도시를 마차가 달릴 수 있게 직선도로를 놓기도 했다. 2,000년전은 그만두고 100년전에도 우리나라에는 직선도로라는 것이 없었다. 모든 길은 자연의 윤곽을 따라 나 있는 곡선도로였다. ..

나의 소울 푸드 김치를 소개합니다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김치의 위력을 잘 아실 거다. 허구헌 날 느끼한 음식만 먹다가 김치 한 가닥이 입안에 들어갔을 때의 그 황홀한 맛이라니! 이 추억을 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라면만 있어도 든든했다. 김치라면이 있다면 아이구 황송해라! 이게 꿈이냐 생시냐? 정신줄 놓곤 했다. 김치맛이 조금만 들어간 컵라면만 있어도 온 세상을 얻은 듯 행복했다. 외국에 나가지 않고 한국에 사는 모든 분들은 마음껏 김치를 먹을 수 있다. 와~ 이런 축복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실 김치의 고마움을 모른다.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다. 그냥 맛 있으니까 먹는다. 하지만 가끔씩 김치가 새롭게 다가올 때가 있다. 미국에 사는 이민 간 친척들과 친구들을 생각할 때 특히 그렇다. 김치를 먹을 때마다 언제든 ..

일상다반사 2022.12.07

판소리 춘향가 눈대목 완창 공연을 보고

여덟살부터 판소리를 배워 김세종제 춘향가를 성우향 명창으로부터 전수 받은 소리꾼 이다은 님이 있다. 그동안 다양한 공연을 하며 활동해 오면서 판소리 다섯 바탕을 무려 13시간 동안 연창하며 세계 기네스 기록에 도전하기도 한 용기와 기백이 넘치는 소리꾼이다. 나는 이다은 님의 찐팬이다. 산책을 나갔다가 대로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고 익산의 무형문화재전수관에서 판소리 공연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공연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드디어 시간에 맞춰 공연장에 도착했다. 많은 분들이 진즉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국악평론가 조동준 님의 해설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었다. 길어야 한 두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웬걸 장장 네 시간이나 이어지는 깜놀 공연이었다. 내 평생 이렇게 긴 시간 무슨 공연을 본 적이 있었던가 ..

일상다반사 2022.11.29